[유퀴즈온 2] 766억 기부한 이수영 회장, 그리고 대물림된 '나눔의 유산

제목] 766억 전 재산 기부, 이수영 회장이 꿈꾼 '과학 강국'과 우리 식탁 위의 위대한 유산

안녕하세요, 뉴욕의 기억을 간직한 **톡톡 지숙(테레사)**입니다.

최근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전 국민을 놀라게 했던 광원산업 이수영 회장님의 이야기를 보셨나요? 전 재산인 766억 원을 KAIST(카이스트)에 기증하며 "대한민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고 일갈하던 그분의 모습에서, 저는 진정한 '부(富)'의 품격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거인의 행보를 통해, 제가 뉴욕에서 그리고 어린 시절 부모님께 배웠던 '나눔의 가치'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1. 766억의 거액 기부, 그녀가 바랐던 단 하나 '과학 국력'

이수영 회장님은 경기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기자직에서 해직되는 시련을 겪었죠. 그녀는 좌절하는 대신 퇴직금 500만 원으로 목장을 시작하며 스스로 길을 개척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아껴 모은 돈을 카이스트에 내놓으며 그녀가 남긴 말은 간결하고도 묵직합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곧 국력이며, 우리 젊은 인재들이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것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나라의 기초를 설계하는 선구자의 혜안이었습니다.

2. 부모님이 가르쳐준 '식탁 위의 의무': 쌀 한 가마니의 철학

이 회장님의 확고한 나눔 철학을 보며, 저는 어린 시절 우리 집 식탁 위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재직하시며 부유한 환경을 일구셨지만, 그 부를 당신만을 위해 쓰지 않으셨습니다.

며칠마다 출근길 식탁 위에 돈뭉치를 올려두시며 어머니께 말씀하시곤 했죠. "오늘은 누구네 집 쌀을 사주고, 저 집 아이 학교 등록금을 대신 내주고 오세요." 주위의 비아냥에도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돈은 나눌 때 더 풍성해지는 법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에게 나눔은 선택이 아닌, 식탁에서 배운 '당연한 의무'였습니다.

3. 시대를 관통하는 선한 의지: 기록되지 않은 위대한 유산

이수영 회장님이 언론의 탄압 속에서도 스스로를 갈고닦아 거대한 기부를 실천했듯, 제 주변에도 그와 닮은 인생을 산 이들이 많습니다. 서울대 수재였음에도 전봇대를 나르며 학비를 벌고, 평생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자신을 헌신했던 시대의 증인들 말입니다.

거창한 이름은 남기지 못했어도, 타인을 위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은 이수영 회장님이 전 재산을 내놓으며 가졌을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 온도가 같습니다. 화려하게 기록되는 기부 뒤에는, 우리 부모님들이 식탁 위에 남겨두셨던 쌀 한 가마니 같은 **'기록되지 않은 위대한 유산'**이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며: 손을 펴서 나눌 때 삶은 더 풍성해집니다

뉴욕에서 33년을 살며 수많은 성공한 이들을 보았지만, 진정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은 '얼마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나누었느냐'를 보여준 분들이었습니다. 이수영 회장님의 큰 걸음과 제 부모님의 소박한 나눔은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움켜쥐기보다 손을 펴서 나눌 때 삶이 더 풍성해진다는 그 고귀한 진리를, 저 또한 이 블로그를 통해 묵묵히 이어가려 합니다.

글쓴이: 톡톡 지숙(테레사)


[SEO 태그 (블로그 노출용)]

#이수영회장 #카이스트기부 #766억기부 #광원산업 #노벨상 #유퀴즈온더블럭 #나눔의철학 #부모님교육 #인생지혜 #과학강국 #대한민국미래 #톡톡지숙 #뉴욕테레사







 과학의 발전은 경제를 발전 시키는 국력

 안녕하세요, 톡톡 지숙입니다.  이삭토스트 김하경 대표님의 이야기에 이어, 유퀴즈 온에 소개된 766억 원 전 재산을 카이스트에 기증해 온 국민을 놀라게 했던 광원산업 이수영 회장님의 생애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이분의 삶을 기록하다 보니, 제 어린 시절 식탁 위에서 보았던 풍경과 평생을 타인을 위해 살다 간 제 남편의 얼굴이 겹쳐져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수영회장은 과학의 발전이 경제의 기틀이 된다는 확신으로 카이스트에 766억을 기부했다

💚766억의 거액 기부, 그녀가 바랐던 것

766억 원... 상상조차 하기 힘든 큰 금액입니다. 하지만 이수영 회장님은 "내가 평생 모은 돈을,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해, 그것도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인재들을 키워 과학, 부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 쓰고 싶다"며 KAIST에 기부하셨습니다. 

1. 시대를 앞서간 거인, 그리고 탄압의 역사

회장은 경기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커리어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기자로 활동하며 진실을 말하려 했으나, 1980년 군사독재의 언론통폐합으로 강제 해직되는아픔을 겪었죠. 이 장면은 제 남편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제 남편 역시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독재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길을 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수영 회장이 해직 후 퇴직금 500만 원으로 목장을 시작하며 스스로 길을 개척했듯, 제 남편 또한 항상 전교 수석을 한 수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금을 고등학교 매년 방학에 전봇대와 벽돌을 나르는 노동으로 마련했고 대학의 학비는 학생들을 그룹 지도해 부모님 도움 받지 않고  마련한 남편과 이수영 회장이 나눔의 기회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습관으로 이루는 철학의 공통점입니다. 

2. 식탁 위의 돈뭉치, 부모님이 가르쳐준 '당연한 의무'

이수영 회장이 전 재산을 기부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아껴 쓰고 저축하되 가치 있는 곳에 쓴다"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철학을 보며 제 친정 부모님을 떠올립니다. 저희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재직하시며 꽤 부유한 환경을 일구셨습니다. 가사 도우미가 두 분이나 계시고 부촌에 커다란 집이 두 채로 넉넉했지만, 아버지는 그 부를 당신만을 위해 쓰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며칠마다 출근길 식탁 위에 돈을 올려놓으시며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오늘은 누구네 집에 가서 쌀 한 가마니를 사주고, 저 집 아이 학교 등록금을 내주고 오세요."

                                                                                            제 부모님은 돈은 이웃과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평생 실천하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왜 남에게 돈을 주느냐는 물음 한 번 없이 *"네, 잘 돌볼게요."*대답하며 그들의 식량과 연탄, 의복,학비를 정성껏 마련해 주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 비웃을 때마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죠. "돈은 나 혼자 쓰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과 나눌 때 더 풍성해지는 법이다. 나만 잘살려고 움켜쥐고 있으면 그 돈 다 쓰기도 전에 죽는다." 저는 그런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타인을 돕는 것은 선택이 아닌 '당연한 의무'인 교육 받으며 자랐습니다.

3. 766억의 기부와 1970년대 성당의 눈물

이수영 회장은 평생 모은 766억 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하며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는 염원을 남겼습니다. 그녀가 꿈꾼 미래는 대한민국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것이었습니다.그녀는 기부는 멈추지 않고 미래에 발생할 재물 모두를 과학의 발전을 위해 더 기부할 계획이라 했다. 

이러한 선구자적 신념은 제 남편이 기자 시절 실천했던 행동과 맥을 같이 합니다. 남편은 1970년대 가난한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요구하는 성금 대신, 굶주리는 고아원 아이들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의 나자로 마을을 돕도록 기부자들을 설득했습니다. 식량과 연탄이 마련될 때마다 성당 뒷자리에서 소리 없이 울던 남편의 눈물... 그것은 이수영 회장이 전 재산을 내놓으며 가졌을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같은 온도였을 것입니다.

4. 뼈만 남은 마지막, 그러나 향기는 남았다

이수영 회장처럼 큰 이름을 남기진 않았어도, 전봇대를 나르며 공부하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무료로 수학을 가르치던 제 남편의 삶은 제 부모님이 식탁 위에 남겨두셨던 그 '나눔의 돈뭉치'에서 시작된 유산이었습니다. 남편은 평생을 치열하게 살다 결국 미국에서 암 투병 끝에 뼈만 남은 'Skeleton'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난의 세월이 몸을 갉아먹었지만, 남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돌보던 이들을 걱정했습니다. 

                      남편은 굶주림과 치료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관심과 그들의 치료와 자립을 위해 활동했다. 

마치며

이수영 회장님의 기사 아래에 제 부모님과 남편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세상에는 화려하게 기록되는 기부도 있지만, 부모님이 식탁 위에 올려두신 쌀 한 가마니의 마음, 남편이 고아원 아이들을 위해 흘린 눈물처럼 **'기록되지 않은 위대한 유산'**들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눔은 나를 풍성하게 합니다

움켜쥐기보다 손을 펴서 나눌 때 삶이 더 풍성해진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저 또한 그 고귀한 의무를 이 블로그를 통해 이어가려 합니다. 

- 톡톡 지숙 한마디-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안녕하세요, peak 1k의 새로운 기록 공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퀴즈 온 4) 전신 화상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이지선

[유퀴즈 온 5 ] 이금희의 '자격'과 '내려놓음'의 지혜